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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

책갈피#5

황차장이 회의실로 안내한다. 책상위에 있는 서너장 정도로 보이는 보고서를 들이밀며 미국 프레드폴에서 사 온 소프트웨어에서 나에 대해 조사를 하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프레드폴이면 범죄예측프로그램으로 돈을 버는 민간회사다. 십여년전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현실화되었다고 떠들썩 했다가 전형적인 학습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문제가 많았던 회사이다.

 

편견마저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특성상 프레드폴 시스템은 흑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예측하는 비중이 백인보다 높았다. LA경찰도 사용중인 이 프로그램은 민간단체로부터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고 있지만 손쉽게 폐기결정을 내리진 못하고 있다.

https://namu.wiki/w/%EC%98%88%EC%B8%A1%20%EC%B9%98%EC%95%88

프레드폴을 언급한 건 의도적이다. 내가 그게 무엇인지 알만한 사람이란 걸 그가 알기 때문에 일부러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LA경찰이 폐기하지 못하는 이유인 일종의 책임회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들이 서로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문제가 발생해도 일반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단어와 이유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전문적인 금융용어와 각종 수식으로 가득하지만 금융감독원의 인가를 받은 파생상품의 약관이나 상품설명서 같은 것이다.

 

한동안 무의미한 대화가 오고가고 있지만 난 내가 밀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을 거의 상대하지 않았을 사람인데 오히려 그런 그의 무미건조함은 나와 너무 닮아 있어서, 아니 나보다 더 무미건조해서 숨을 막히게 한다. 벗어나야 하는데.

 

그럼 오늘은 이 정도로 하시고, 내일 한번만 더 시간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그 역시 짜증이 나 있음이 느껴진다. 보고서는 두 번째 장까지밖에 진도를 빼지 못했다. 주로 추진했던 업무와 내가 제안해서 만들어진 해외개발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듯이 보였지만 참고사항으로 적혀진 사항에는 금융정보기술협회에서 만난 윤의 이름과 모임횟수가 적혀 있었다.

세 번째 장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너무 궁금했지만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걸 난 직감했다.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호출이라는 핑계로 난 내일 이어가자고 했고, 황차장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내가 일어나며 흩뜨린 건진 모르지만 세 번째장이 살짝 비친다. 역시 예상대로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고, 다이어리를 덮었다. 덮여진 다이어리 사이에 잠자리 모양의 수공예 책갈피가 보인다.

 

자리로 돌아왔다. 팀장은 자리에 없다.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빨리 확인해야 할 게 떠올라 맘이 급해졌다. 근태 시스템을 켜고 오후 반차를 눌렀다. 이미 3시가 다 되어 가지만 이런 땐 외근보다 반차가 낫다. 병원진료로 사유를 입력한 후 저장하고 화면을 닫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근태사유를 신경쓰고 있는 걸 보니 뼈속까지 직장인이란 생각에 쓴웃음이 올라온다.

https://www.jrc.co.jp/ 에서 인용

집에 오자마자 거실에 있는 노트북에 카드도청기 데이터를 이동시킨 후 도청기를 포맷했다.

서재로 들어왔다. 서재에 전자기기라고는 전등과 회사용 노트북, 그리고 선풍기가 전부지만 IoT용 칩은 전자기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카드도청기를 켜고 내 의자에 앉아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5분쯤 지나 도청기를 끄고 거실로 있는 노트북을 가져와 도청기 데이터를 노트북으로 옮긴 후 노트북에 있는 전용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오늘 날짜로 기록된 2개의 파일 중 방금 저장한 파일을 불러온다. 음성정보, 위치정보, 디바이스정보 메뉴가 보인다. 디바이스 정보를 누르니 검은 화면 한가운데 노란 점이 보인다. 카드도청기다. 노란 점을 중심으로 파란색과 빨간색 점이 카드로부터의 거리와 높이, 그리고 강도가 숫자로 나타난다.

 

종류를 인식할 수 있고 공개토큰이 담겨진 IoT 제품은 파란색으로 표시된다. 회사 노트북, 선풍기, 전등, 의자, , 선인장화분, 벽시계를 나타내는 파란색점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서재에 이렇게 많은 IoT 제품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공개된 상용품이 아니거 의심되는 IoT 제품을 가리키는 빨간색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빨간점 중 하나는 노란색 점에서 오른쪽으로 2미터 정도 거리, 2.5미터 정도 높이에 있다. 고개를 돌려 위를 보니 거기엔 회사에서 받은 상패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 쓴채 덩그러니 놓여있다. 회사로고가 박힌 배구공, 회사에서 재택근무자에게 보낸 간식박스도 빨간점으로 표시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노란색 점과 불과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거리, 내 손이 닿는 거리쯤에 모여있는 빨간색점이 화면에서 보인다. 빨간점은 네 개, 아니 다섯 개다. 아무리봐도 그 거리엔 노트북뿐인데, 혹시나 하고 서랍을 열어보았다. 거기엔 갖가지 모양으로 예쁘게 조각된 수공예 책갈피 다섯 개가 놓여 있었다.

서랍안에 책갈피. 누가 누구를 감시하기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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