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고대리님은 정말 대단해요."
팀장이 된 후 난 여전히 계장들과 친하다. 외부에서 왔다는 이유에선지 아니면 나의 노력(?)이 스물스물 영향을 끼친건 지 모르나 계장들은 은행 공채 출신 고참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오늘은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같은 부서였던 후배 조계장을 오랜만에 연락이 와 점심을 먹는 날.
오랜만의 만남은 만나기전의 설렘과 기대와는 달리 공통적인 소재찾기로 꽤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한달이든 1년이든 직장생활에서의 루틴을 공유하는 건 하루 8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것이기에 이런 저런 같은 경험이 쌓이지만, 부서만 틀려져도 전혀 다른 사람과 관심사에 둘러쌓여 여간 쉽지가 않다.
다행히 나와 지금 같은 팀에 있는 고대리가 예전 조계장의 팀직속 선배였다.
나만큼이나 공통소재를 찾은 게 반가웠는지 조계장은 저렇게 말했다.
1초, 아니 2초 정도의 정적.
뭐라고 해야할 지 몰라 망성이다가 "으응. 그렇지 맞아." 정도로 슬쩍 넘겼다.
아직 어린애라 내 느낌이 다 전달되지 않았던지 한참을 고대리에 대한 칭찬으로 밥 먹으러 가는 동안의 공간을 채운다.
하...
고대리는 우리팀에서 여러가지로 골치다. 나도 최대한 객관적이려고 노력하고 편견을 안 가지려고 노력하지만...골치다.
사악하거나 못된 게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전산과 출신이라 프로그램도 짤 줄 알긴 아는데, 글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어서 그 부분에 대한 평가는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편견이 없음에 대해 변명을 좀 하고 가야할 것 같다.
2년 전 같은 부서에서 고대리와 서비스 출시를 했던 K.
그녀는 고대리 얘길 하자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 만나는 조계장이 속해있던 팀의 팀장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J팀장님, 고대리와 어떻게 일하는 게 좋을까요?"
난 단 한번도 이런 류의 질문을 한 적이 없었는데 나로서도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자아성찰 후 묻게 된 것이었다.
그 팀장의 대답.
"일 안 맡기는 게 좋아. 특히나 복잡한건."
지금 함께 일하는 M이 슬쩍 내게 와서 말한 적도 있다.
"가능하면 고대리 일은 우리 크로스 체크하자. 그리고 자기가 좀 잘 케어해줘."
(왔떠...)
웃으며 내 눈을 보는 조계장에게 용기내어 물었다.
"오. 고대리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대단한거야"
조계장은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크고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말한다.
"고대리님 가고 나서 보니 맡고 계신 일이 정말 많더라구요. 그 많은 걸 저희가 나눠 받았는데 어찌나 할 게 많던지.
그리고 코딩도 잘 하시잖아요. 집에서 프로그램 돌려서 투자도 하고 막 그렇다던데."
'받고 나니 할 게 많다는 건 그만큼 효율화가 안되어 있는 거고,
은행 대리면 다 그정도는 한단다.
프로그램 하는 거 본 적은 있니?' 는 마음 속의 외침이었고, 난 그저 빙긋이 웃었다.
내가 아는 고대리
조게장이 아는 고대리
K가 아는 고대리
M, J가 아는 고대리...
어쩌면 모두가 다 다른 고대리일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부캐, 최근 가장 트렌디한 멀티 페르소나인데.
왜 이리 난 뭔가가 불편한 건 지.
조계장과 밥을 먹고 다시 돌아가면 내 옆자리의 고대리와 난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무언가를 해야겠지.
난 그에게 어떤 모습일까?
사실 저 질문의 답이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고대리 역시 별 관심이 없겠지.
이렇게 하루가 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