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 대한 감시가 매우 철저했던 회사를 다니다 오고, 그러한 변화가 점점 확대되어가는 변화를 이미 봐왔던 나는 이 곳의 변화도 단지 시간문제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근무시간 중에 불필요한 자리이석이나 게시물 클릭, 행내 익명게시판 등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게시물은 아예 클릭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전 직장에서 하던대로만 하면 되는 거라 별로 불편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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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로그를 수집하는 제도가 시행된 후 2년이 지난 즈음 백여명이 무더기로 대기발령이 났을 때 눈치 빠른 몇몇은 눈치를 채기도 했지만 그 역시 그걸로 끝이었다. 대기발령 공문에는 다양한 이유가 달려 있었고, 특별히 노조에서도 성명서같은 과격한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충격은 오래가질 않았다. 조직관리를 할 때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며 반응을 무시하는 일이다. 한동안 몇 명의 직원들이 익명게시판에서 항의도 하고 울분을 토로했지만 기다려달라는 답변과 적당한 수준의 무시로 이번 건도 게시물이 2페이지로 넘어가며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좌우간 우린 아침마다 번갈아가며 메신저와 로그기록의 시작을 경어체를 사용한 업무관련 용어를 써가며 하루를 시작한다. 김차장은 나와 농담 따먹기를 하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자는 이유로 연락을 하는 거였고, 연락을 할거면 로그라도 남기도록 이런 식으로 하자고 내가 제안한 터였다. 김차장에게야 그냥 농담따먹기의 오프닝 정도의 무게일 것이다.
'그럼 자료 업데이트하고 다시 논의하시죠.' 라는 말로 난 김에게 오늘은 시간이 안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메신저를 닫았다.
아직 시간여유는 있지만 나가는 길에 바람을 좀 쐬고 싶어 바탕화면의 'L금융' 아이콘을 찾아 더블 클릭했다. 내 노트북에 바탕화면의 'L금융' 아이콘은 2개가 있다. 언뜻 보면 똑같이 생겼지만 미세하게 다르다.
바로 매크로 바로가기 아이콘이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매크로는 이미 2년째 사용하고 있다. 몇 차례의 업데이트를 한 최신버전인데, 처음 내가 구매했던 매크로를 개인돈을 써가며 인도 해커에게 리버스엔지니어링(역공학)을 하여 분해하고, 수차례의 업데이트를 하였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재미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내 노트북에 깔리게 되었고 가끔 사용하며 개인적인 일을 보거나 종종 익명으로 하는 유튜브강의와 같은 걸로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초기 라이트버전은 중고마켓이나 인스타를 통해 판매를 하고 있는데, 이 역시 모두 실명계정이 아니고 대금은 비트코인으로 결재를 하니 어디에도 거래의 흔적이 남질 않는다. 매크로는 보안소프트웨어를 설치한 SoC(System on Chip, https://en.wikipedia.org/wiki/System_on_a_chip) USB에 담아 팔고 있는데, 노트북이나 컴퓨터 1대에 매크로를 설치한 로그가 감지되면 USB에 있는 매크로는 흔적도 없이 포맷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System on a chip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ump to navigation Jump to search Integrated circuit that incorporates the components of a computer The Raspberry Pi uses a system on a chip as an almost fully contained microcomputer. This SoC does not contain any kin
en.wikipedia.org
매크로라는 구닥다리 이름을 쓰고는 있지만 간단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파일 크기도 상당하고 하는 일도 많아서 처음 만들었을 땐 매크로가 실행도는 동안 컴퓨터의 메모리와 CPU 사용량이 갑자기 증가해 애를 먹었다.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지 않을때보다 리소스 사용이 많지만 실제 사용량보다 적게, 평소사용량 수준으로 다시 기록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좌우간 매크로가 실행되는 동안 나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거래가 있는 날이라 평소보다 좀 일찍 실행시켰다. 일어서는데 사내메신저 소리가 들린다.
'있나?'
팀장이다.
'네 자리에 있습니다.'
'어제 말한 보고서 오늘은 제출해. 부장이 난리야.'
'앗. 죄송합니다. 오늘 중으로 마무리할게요'
'미안해. 부장이 자네꺼만 자꾸 찾아. 머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네가 찾는 거겠지라고 난 생각을 하며 핸드폰으로 약속장소를 확인했다. 모든 대화는 매크로가 해 주고 있기 때문에 내가 크게 신경쓸 건 없다. 가끔 과도하게 긴 문장으로 사람도 이해 못하게 대화를 걸어오는 경우에 대한 기계학습은 계속 진행중이긴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대부분의 대화는 1년이 넘는 각종 대화기록을 바탕으로 학습을 시켰기 때문에 큰 무리없이 답변을 하고 있다.
그 사이 매크로는 겸손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아닙니다. 제가 빨리 처리했어야 했는데...'
난 더이상 보지 않고 옷을 들었다. USB가 담긴 봉투를 들고 책상위를 훑어보다가 책상 서랍에 있던 수공예로 만든 책갈피를 하나 들어 봉투에 넣었다. 별건 아니지만 이런 깜짝선물을 사람들은 꽤 좋아한다.
너무나 맑은 하늘과 깨끗한 거리가 갑자기 생경스럽게 느껴진다. 코로나는 인간의 삶만 바꾼 게 아니라 자연까지 바꾸어가고 있다. 외출하지 않는 사람들, 방역과 위생에 신경쓰는 회사와 정부 덕분에 최소한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은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만큼 깨끗하다.
나오면서 우버앱에 행선지를 입력했다. 걸어가고 있는데 핸드폰이 진동한다. 근처에 왔나 보다. 이제 더 이상 옛날처럼 출발지에서 콜택시를 부르고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필욘 없다. 어디로 이동을 하든 전기택시는 내가 위치동의만 하면 내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따라와서 약 이십여 미터 전에 내 위치를 확인하여 진동한다. 조금 더 걷고 싶으면 핸드폰을 흔들기만 하면 된다. 그럼 5분 후에 다시 내 위치로 전기택시가 다가온다. 적어도 십년은 더 걸릴거 같던 무인주행은 기존의 딥러닝과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꾸준히 시운전하고 있던 식당서빙 로봇, 근거리 배송과 같은 소형기기의 시험주행 기술이 자율주행차량에 접목하여 급속도로 진전되더니 급기야 작년초부터 출발지로부터 10km 이내 거리는 택시자체에 내장된 에지컴퓨팅 기술로 백퍼센트 무인주행이 가능해졌고, 주행거리가 10km가 넘어가면 추가요금이 부가되어 도로 곳곳에 설치된 스테이션 서버의 도움을 받아야 자율주행이 가능해졌다.
약속시간까지 아직 여유는 좀 있지만 햇살이 너무 강해서 그냥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기사가 없다는 건 불필요한 대화나 담배냄새, 거친 운전을 보지 않아도 되니 편하기만 할 줄 알았지만 좀 아쉬운게 있는 건 사실이다. 택시를 타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퇴역장군 출신, 2급 공무원을 하다 운전대를 잡은 분이나 나같은 회사원 출신의 개인택시 기사분들과의 대화는 재미도 있지만 배울 게 많아 가끔 부러 말을 걸기도 했다.
그 많은 택시기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두 누군가의 부모거나 자식일텐데.
택시에서 내려 카페로 들어갔다.
약속시간이 되니 한 남자가 들어온다.
세상 모든 사람이 6단계로 연결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만든 사이트였던 Oracle of Bacon(https://oracleofbacon.org/)을 모티브로 한 Oracle of Everyone 덕분에 경찰청 수준으로 신원조회를 누구든 할 수 있게 되었다.
The Oracle of Bacon
oracleofbacon.org
회사직원, 정부기관 공무원, 신문기자, 하물며 내 주변 사람까지 모두 확인해서 관계가 3단계 이하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했지만 여전히 거래할 땐 주의하고 있다. 처음엔 지방에서만 주말을 이용해 주로 거래했지만 몇가지 검증방법을 더하고 매크로가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 된 이후로는 서울근처에서도 거래를 하고 있다.
약 5년전 은행에 왔을 때 난 길어야 삼사년 정도 있다 나갈 거라 예상했었다. 내가 그간 옮겨가며 근무했던 모든 곳에서 내게 보여준 모습은 대부분 비슷했다. 첫직장의 경험을 두 번째 회사에서는 사고 싶어했고, 세 번째 네 번째 역시 바로전 회사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최대한 빨리 회사자산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입사를 하면 고참급 대리나 과장을 하나 내게 붙여 일거수 일투족을 배우게 하는 거였다. 그렇게 1~2년 한두건의 프로젝트를 같이하면 대부분의 노하우가 전수되고, 자연스레 재계약을 할 때는 이미 내가 유일한 사람이 아니니 전혀 다른 조건을 제안했다. 처음엔 이 당연한 논리를 이해하지 못해 사람에 대한 배신, 조직에 대한 배신이라는 TV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갖가지 상투어를 읖조리며 술잔을 기울이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조직의 불합리성과 이기적인 행태에 대해 푸념하곤 했다. 나의 넋두리를 두어 시간 들어주는 대신 덕분에 평소에 먹지 않던 요리를 먹을 수 있으니 가성비가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네번째 직장때는 업무량의 완급조절을 했다. 하지만 좋은 전략은 아니었다. 2년후 재계약때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질 못했고, 인수인계 받는 직원 역시 나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았다.
전략을 바꿔야했다. 결국 시간의 문제지 2년이든 3년내에 털리기 때문에 난 아예 패를 까고 접근했다. 입사를 위한 인터뷰를 할 때 2년간 만족할 만한 성과와 후임자도 키워놓을테니 2년간 터치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2년 후 재계약시 계약서상의 숫자만 높여주면 2개월 안에 다른 회사로 옮기겠다고 했다. 물론 이게 문서로 남겨지지도 않았지만, 나나 인사팀은 내가 나가지 않으려 하면 감사팀으로부터 뭐든 얻어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 2개월짜리 계약서를 헤드헌터에게 쥐어주며 계약금액 기준 5퍼센트가 성공보수라 하면 모든건 일사천리다.
일곱번째 직장인 이 곳에서 난 벌써 5년을 머물르고 있다. 옮기자마자 코로나가 터지면서 거의 일년을 뭐가 뭔지 정신 못차리고 우린 2020년 겨울을 맞이했고, 다음해에 부장으로부터 무려 3개 프로젝트의 PM을 동시에 맡으라는 지시가 들어왔다.
하루이틀 정도 고민하다가 은행 와서 일년간 잘 놀았으니라 생각하며 1년간 마치 신입사원 시절처럼 일에 매달렸다.
막상 시작하려 했더니 개발인력 기술필터링은 고사하고 평판 스크리닝하는 방법도 없어 같은 사람들이 회사를 바꿔가며 계속 수주를 하고 있었다. 관련된 담당자들은 위아래 가릴 것 없이 뭐가 되었든 오픈만 하면 된다는 걸, 정확히는 잡음 없이 오픈만 하면 된다는 걸 잘 알고들 있었다.
본사에서 좀 떨어진 곳에 프로젝트 사이트를 만들고 전국이 아니라 국내외, 온오프라인을 다 찾아서 팀을 꾸렸다.
아무것도 없다보니 사람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서 IT개발 프로젝트의 틀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회사를 옮길때마다 뭘 들고오는 성격이 아니라 간단한 프로세스까지도 새로 그리고 쓰고, 인터넷에서 찾아 갖다붙이고 해야 했다. 덕분에 몇페이지에 어느 부분에 있다는 것까지 머릿속에 잘 정리가 되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회사에서는 팀장을 맡아 너댓명을 데리고 더 빌드업 시키며 추가프로젝트 하길 원했으나 난 그냥 만년 차장으로 있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어차피 행원출신 성골도 아닌 마당에 내가 핏대 세우고 싶지도 않았고, 뻔히 보이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병풍역할을 하고 싶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