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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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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써본다. 

빨간 국물이 흘러내리는 김치독이 되지 않길 바라며....

 


언제부터인가 아침을 깨우는 건 핸드폰알람이 아니라 각종 PUSH 메시지다. 겨우 눈을 떠 확인해 보니 출근길 10분을 이용해 간단한 정신상담을 받아보라는 광고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엔 위험할 수 있으니 엠비언트 사운드 모드를 하라는 친절한 안내도 잊지 않았다. 

이제 내 아침을 깨우는 건 광고성 푸시 메시지다.

지난 주에도 비슷한 PUSH가 왔던거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난 번 업체는 2+1 이벤트를 한다는 둥의 메시지였던 거 같다. 이 업체는 도대체 어떻게 내가 자전거를 타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출근 시간이 20분 남짓이란 걸 아는 걸가. 하지만 이런 궁금증은 이젠 시간낭비일 뿐이다. 오히려 내게 딱 들어맞는 상품제안이나 할인서비스를 놓치지 않기 노력하는 편이 낫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이삼초의 시간동안 나의 뇌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으리라. 지난 사오년간 각종 마케팅 회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산업의 회사들은 돈이 되는 정보의 범위를 재정의하고 수집방안을 강구하는 시간이었다. 마치 오랜시간 동안 아무 생각없이 버려지고 있던 태양에너지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부랴부랴 재생에너지에 뛰어든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홈페이지 로그인정보, 앱사용량, 페이지와 같은 정형화된 정보에서 SNS, 카톡대화, 출근길경로뿐만 아니라 나의 걸음걸이, 내 심장박동수 하물며 내가 하품하는 시간대와 횟수나 어떤책을 볼 때 가장 오랫동안 책을 보는 지도 이제 중요한 정보가 되었고 수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IoT(Internet of Thing)은 IoE(Internet of Everything)으로 정착되었고,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은 IoT제품이 되었다.


이 모든 변화는 한마디로 정의하면 과거엔 없던 정보의 수집과 활용이었다. 
특히 오년전 전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코로나 이후 회사들은 더더욱 IT기반의 정보수집과 활용이 시장선점의 핵심임을 절감하였고, 이러한 회사뿐만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정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였다. 즉, 나의 정보가 회사들의 정보제공동의 수동적으로 동의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회사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사고팔 수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언제든 필요에 의해 나의 모든 정보가 낱낱이 파헤쳐져, 그것도 공공기관에 의해 공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위험하거나 부정적인 정보를 무시하려는 인지편향인 타조효과는 이번에도 유효해 보였다. 나의 정보가 관리되고 때에 따라 공개될 수 있는 건 공익을 위한 것이고, 필요한 경우 최소한의 범위에서 공개될 것이라고 자기만의 결론을 내렸다. 대신 나의 위치정보를 A마켓에 팔 땐 월 1500원인데, C마켓에 파니 월 2000원이라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어느새 시간이 꽤 흘렀다. 오늘도 늦지 않게 로그인을 해야한다. 일주일에 2회를 초과하여 지연로그인을 하면 연봉이 0.1% 차감된 채로 내년에 협상을 하게 될 것이다. 문젠 일주일단위로 누적이라 최대 5%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 철밥통인 줄 알고 들어왔던 은행에서 연봉의 감소를 고민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입행 후 첫 오년간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잘 나가는 증권사의 잘 나가는 부서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은행으로 간다고 했을 때 단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말렸다. 뭔진 모르지만 새로운 것에 이끌렸고, 은행에 온 후 서너개의 프로젝트를 할 때까진 눈꼽만큼의 후회도 없었다. IT회사와 몇군데 금융회사의 경력은 디지털과 투자금융으로 영역확장을 진행중인 은행에서 보기에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입행 후 몇 년지난 후부터 시작된 주 52시간 근무나 한달에 몇차례씩 근무시간을 변경할 수 있는 제도, 상대적으로 낮은 근무강도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은행에 오기 전 십여년간의 주말없이, 주 칠팔십여 시간씩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 바로 여기라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은 시작되었다. 

 

5년전인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수십년간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도 하지 못했던  은행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한동안 맥주이름과 헷갈려 이름이 맞는 건지 사람들을 한참 헷갈리게 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해낸 것이다. 벌써 오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일은 모두에게 강한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특히 거리에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모습은 봐도봐도 어색한 광경이었다. 민둥산에 빨리 자라는 삼나무를 심었다가‘가훈쇼’라고 불리는 꽃가루 알레르기로 봄철마다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는 일본인을 보며 혀를 찼었는데, 이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매일 마스크를 생활한다. 하루종일 쓰는 마스크 덕분에 아픈 귀를 커피믹스 손잡이를 사용해서라도 아픔을 덜어주어야 했고, 마스크가 패션아이템이 되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 각 회사들은 앞다투어 재택근무를 시행했고 은행역시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 결과로 지금은 은행 전체 직원의 절반이상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재택근무가 일종의 축복이고 선택받은 자의 상징이었다. 물론 한두달은  눈치를 보며 내가 집에서 놀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메일과 메신저, 이런 쇼잉과 시간대별로 작성하는 업무일지 때문에 사무실에 있는 게 훨씬 편하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을 깨닫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오랜 관행이 깨지는데 걸린 시간의 수만분의 일이었다.

'까똑'

카톡소리가 생각의 흐름을 다행히 끊어주었다.

‘다음 주에 한번 더 부탁하면 안될까? 갑자기 또 회의가 잡혔어.’

박차와의 거래


박의 카톡이다. 나도 모르게 얼마라고 할 뻔 했으나 다행히 하루 만원 정도면 되냐고 먼저 톡이 날아왔다. 카톡이 오자마자 이미 거래앱을 실행시켜 하루당 만이삼천원에 거래중인 걸 확인했기에 바로 답장을 날렸다.

'콜'

워라밸 극대화, 은행근무의 혁신, 가족을 배려한 기업문화 등등의 화려한 수식어로 시작되었던 초기 재택근무는 어느새 블라인드 거래앱에서 거래하는 일종의 신종증권이 되버렸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데서 오는 피로감과 정해진 시간단위로 체크하는 보안앱, 가끔 푸시메시지를 날려 위치정보를 보내게 하는 인사부의 고전적인 재택근무 모니터링은 이젠 커피값을 줘가면서까지 가끔은 기피하고 싶은 게 되버렸다.  
거기다 이십여년 가까이 해본적 없는 매일매일의 가족과의 시간과 공간의 공유가 일부 사람들에게는 되려 힘든 일인 것이다. 인사부에서도 노조와 어느 정도 협의가 된 사항이라선지 대체사유만 몇 줄 적어내면 재택근무를 바꾸는 행위에 대하여 별 제재를 하진 않는 현실이다. 회사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회사 재택근무 거래가격이 다른 회사보다 높은 걸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회사의 근무만족도가 높다는 재미있는 결과로 귀결된다는 생각에 웃음이 새나온다.

'딩동'

이번에 텔레그램이다. 공부장이다. 카톡이 아니고 텔레그램으로 보낸 걸 보니 또 뭔가 부탁이 있나 보다. 열긴 싫었지만 내가 재택인 걸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매크로 좀. 제발 플리즈 오늘 주민센터 가야함'
'ㅎㅎ 저 아니래두요. '
'진짜 이러기야. 서운하네.'
‘아이고 형님. 저도 이제 몇 년 안남았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러겠어요.’

서운하긴, 학교 선배라고 이거 저거 시키는 거 몇년간 다 해줬더니 항상 뒤통수다. 정작 본인은 본인이 뭐가 문제인질 모르니 피하는 게 상책인 타입이다. 

매크로. 90년대에나 나올법한 단어지만 요새 재택근무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핫한 단어다. 매크로는 재택근무 모니터링 툴이나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의 라이브러리를 인젝션하는 일종의 해킹툴이다. 결국은 알아서 일하는 것처럼 해주는 건데, 과거엔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정해진 시간단위로 특정파일을 열고 닫고 하여 컴퓨터의 프로세스 사용량을 일정시간 유지시키는 정도였지만,이 정돈 이제 개인 블로그에서도 쉽게 내려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매크로 덕에 안그래도 바쁜 정보보호부와 인사부 담당자들이 골머리를 썩히는 중이다.
물론 나에게도 간접적으로는 신경이 쓰이는 것 중 하나다. 어디서 무슨 소릴 들었는지 저번에도 내게 매크로 얘길 하더니... 찝찝하긴 하지만 더 알아볼 필욘 없다.
어찌되었든 이런 매크로들 때문에 재택근무용 노트북은 로그인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CPU나 메모리를 아무리 늘려도 감당이 되질 않는다. 마치 90년대 PC통신처럼 키보드 속도를 화면이 따라오지 못하는 어이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사항은 주로 인사부 담당일텐데 한동안 정보보호부가 깊이 관여를 하고 있었다. 정보보호부는 코로나이후 삼사년간 인사부나 전략기획부 파워를 앞지르고 있었다. 그 결과로 왠만한 대형회사들의 보안부서는 과거 안랩 연구소에서 하던 일의 대부분을 수행하고 있다. 이미 몇 년전 안랩은 작은 중소기업들 중 하나로 전락했고, 회사별로 보안부서가 CIC(Company in company) 형태로까지 커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은 홈페이지의 단어 하나 바꾸려해도 한달이 걸리던 비효율적인 전산개발 프로세스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재택근무의 모니터링을 직원이 매일 일과종료후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는 일일업무일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의 타개가 정보보호부에게 주어진 가장 긴급한 과제였다. 결국 해결방안은 해외에서 찾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도 해외개발자, 특히 인도개발자들과의 협업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협업툴의 부재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인해 활성화 되지 못했었다.
하지만 요새는 Fiverr.com(https://www.fiverr.com/) 같은 해외 전문코딩 아웃소싱 회사들이 늘었났고, 두세명씩 스크럼을 구성해 단기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익숙한 직원들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직원들의 영어수준도 상당해서 인도나 북유럽 프로그래머들과의 업무진행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정보보호부는 젊은 직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나처럼 오늘 내일하는 치들이야 보내주지도 않지만 가지 않기 위해 최대한 촉을 세워야한다. 작년에 아직 4년이나 남은 부부장 하나가 정보보호부에서 가장 보잘것 없는 9팀 팀장으로 갔다가 3개월만에 명퇴를 신청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해가 되는 대화라고는 밥 먹으러 가자 정도였다고 하니 아마 브라질이나 러시아 한가운데 있는 지점에 발령난 기분이었을 것 같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재택이신가 보네요?'

김차장의 메신저다. 사내 메신저에서는 항상 이렇게 경어체를 쓴다. 

'어제 말씀드린 메드커뮤니케이션과의 제휴 진행이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또 이런다. 그렇게 몇번을 말했는데.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집어들어 카톡으로 한소리했다.

'제발 아무거나 던지지 좀 마. 메드커뮤니케이션은 또 머야'
'ㅋ 어제 밤에 본 넷플릭 제목'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는 단어는 쓰지 말랬잖아'
'아놔. 아무도 신경 안쓴다니까 그러네. 좌우간 알쓰'

김차장처럼 은행에만 계속 있다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이해시키기 어려운 부분이다. 쇼핑앱에서 구매를 제안하는 유행지난 N사 운동화가 내가 몇 달전 다른사람이 신상이라 자랑하던 인스타에 댓글을 달고, 쇼핑몰에서 한두번 검색하다 포기했던 운동화라는 걸 나는 모르지만 시스템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건 생각보다 쉽지않은 일이다. 로그인이 되자마나 경어체를 써가면 사내 메신저를 주고받는 건 로그를 남기기 위해서다.
하루종일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회사 노트북에 기록이 남는다. 문서작업을 언제 얼마나 했는지, 누구랑 대화를 뭐에 대하여 하는지, 하물며 마우스를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까지 모든게 남겨진다. 회사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 하물며 냉장고를 열고 닫는 것까지도 로그가 남겨지고 내가 원하면 그것을 누군가에게 팔수도 또 누군가의 것을 살 수도 있다. 물론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수집해가고도 있을 것이다. 
업무로그 수집은 대부분의 대기업의 경우 감사용이나 여러가지 목적으로 오래전부터 기록하고 관리하고 있었지만 은행은 좀 달랐다. 물론 은행도 솔루션도 있고, 인력도 있고, 방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의 반대는 다른 금융사들보다 훨씬 강했다. 하지만 그 반대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수그러들었고, 보너스와 청원휴가 확대 등등 몇가지 안건과 함께 어느새 노사합의가 되어 있었다. 특히 재택근무 이후 훨씬 더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로그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로그 수집에 직원에 대한 감시한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알고는 있지만 그 범위나 방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회사는 각종 경영전략을 추진하고 제도를 바꿀 때마다 노조와 사외이사, 주주를 설득하기위한 근거자료로 종종 사용하고 있었다. 정작 그 이해관계의 한가운데 있는 직원들만 관심이 없는 것은 참 웃픈일이다. 아마 노조 역시 회사와 협의를 할 때는 당시엔 이게 얼마나 목을 죄는 일인지 예상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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